정보공개
행복을 품은 도시, 미래를 여는 기장
콘텐츠시작
미역 진시황이 찾던 불로초 - 기장사람들 주요소식 게시물 보기
미역 진시황이 찾던 불로초
|
작성일2023/02/01/
작성자
관광진흥과
조회수165
|
다운로드사본-01-15-미역.jpg (1288 kb)
|
'미역' 진시황이 찾던 불로초 우리 집 앞 기장 바다는 파란 잉크를 푼 것 같이 바닷속 두 질 깊이까지 속이 훤하게 들여다보이는 참 동해이다. 그곳에는 겨울의 찬 기운에도 불구하고 심을 꼿꼿하게 세우고, 조류에 잎을 이리저리 일렁이며 짙은 미역이 숲을 이루며 자라고 있다. 미역이라는 말은 '미+역'의 합성어로 '물에서 나는 여뀌'라는 뜻이다. 여뀌는 잎이 풍성해서 미역과 모양새가 비슷하며 매운맛이 지독해서 양념으로 많이 쓰이는 채소의 일종이다. 기장의 바다는 예부터 곽전(藿田)이라고 불린 유명한 미역밭이었다. 그 미역밭은 해마다 좋은 품질의 미역이 많이 자라 조선 왕실이 직접 관리를 할 정도였다. 옛적에 진시황이 서불에게 명하여 불로장생의 불로초 선약을 구하기 위해 동남동녀 오백을 실은 선단을 신선이 산다는 삼신산 동쪽으로 보냈다. 그가 불로초를 찾기 위해 상륙한 곳곳에는 '徐市過此(서불과차)'라는 명문을 돌에 새겨 놓았는데, 남해의 양아리 바위, 매물도 석벽, 제주도 정방폭포 석벽 등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하지만 불로초를 찾으러 산과 섬만 돌아다니다가 실패하고 돌아가고 만다. 서귀포라는 이름은 서불이 불로초를 못 찾고 돌아갔다고 붙은 이름이다. 불로초가 그렇게 쉽게 눈에 띈다면 선약이 아니었다. 서불이 애타게 찾던 불로초는 바닷속 깊숙이에서 자라고 있었다. 그것은 미역이었다. 8세기경 당나라 서견은 초학기(初學記)에서 '고구려인들은 고래가 몸을 풀고 미역을 뜯어 먹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따라 미역국을 해산 식품으로 먹는다'라고 독특한 해산 풍습을 기록하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탄생 음식으로 미역국에 밥 한 그릇을 말아먹었던 유구한 역사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진시황도 못 먹어 본 불로초 생미역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쌈을 싸 먹고 젓갈에 찍어 먹고 나물로 초무침도 해 먹는다. 그래서 본격적인 미역 철 겨울 두 달 정도는 바닷속에서 캔 이 불로초를 입에 달고 살고 있다. 서불이 삼신산만 쳐다보고 다닌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바닷속을 봤다면 큰일 날 뻔했다. 김준호 국악인
|
담당부서문화복지국 관광진흥과
전화번호051-709-4071
최종수정일2023-09-14